유통기한 지난 삼류화가라 자처하는, 그러나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 화가 이왈종 화백을 지난 28일 '제주 생활의 중도' 개인전이 열리는 현대화랑에서 만났다. 

이 화백의 소탈하고 배려 깊은 매너가 인터뷰 내내 그의 그림마냥 편안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 춘화와 함께 사인을 하고 있는 이왈종 화백

 

 

1990년 추계예술대학 교수 시절 잠깐 안식년을 보내고 오겠다던 제주행이 제주란 처자와 사랑에 빠져 어느덧 27년이 흘렀다.

천국과 서귀포 중에서 고르라면 서귀포를 택하겠다는 이 화백은 작품을 통해 제주의 정취와 '중도와 연기' 철학이 배어든 일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절대 자유의 세계를 추구하는 이 화백은 기존 한국화의 공식에서 벗어나 꽃, 자동차, 물고기, 새, 나무 등 일상 속 여러가지 소재와 사람을 크기에 차이를 두지 않고 그려 만물의 평등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홍익대 겸임교수)는 '이왈종의 삶과 예술'에서, 이 화백은 인간과 만물은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더 작을 필요도 없고 동등하다는 생각을 그림을 통해 드러낸다고 평한다.

또한 이 화백은 춘화를 통해 가려진 일상을 폭로, 대담하고 놀라운 해학성을 보이고 있으며 유일한 취미인 골프를 화폭과 골프공에 담아 대중들에게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드라마틱한 골프가 삶의 축소판이야. 내기할 때 느끼는 기쁨과 분노, 그게 다 우리네 희노애락하고 닮았잖아."

골프공에 춘화를 그려 라운딩을 하는데 행여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동반자들이 서로 찾으려 애쓰며 무척 즐거워들 한단다. 항간에선 이 화백의 춘화 그린 골프공 한 개가 100만 원이라고 하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겠다.

 

▲ '제주 생활의 중도', 이왈종 화백 작

 

 

"새 소리, 풀벌레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듣는 제주, 여기가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 화백은 새벽 3시, 어김없이 바다 저멀리 보이는 등대불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 잔에 붓을 든다. 

 

"늙어 잠이 없어 그러지. 유통기한 지난 노인네가 이 생각 저생각 하는 거야." 

듣는 이 불편하지 않게 겸양을 보이지만 이 화백은 인간의 행,불행은 어디에서 오는지, 인간사 다 꿈이요 물거품이라는 삶의 무상함을 실감해 늘 중도와 연기를 되새기고, 모든 세상사에 집착을 버리고 살려 노력한단다.

평소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나선지 이 화백의 작품을 보고있노라면 한 편의 시를 읽는 듯, 자연의 음악을 듣는 듯 편안하고 유쾌한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난 집도 절도 없어. 미술관도 문화재단이야. 난 자유롭게 살면 그 뿐이지."

10년 전부터 어린이를 대상으로 무료 미술 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3년 자신이 거처하던 자리에 왈종 미술관을 건립해 문화재단을 만들었다. 또한 나눔의 일환으로 매년 유니세프에 기부도 하고 있다.

▲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유니세프에 기부를 하고 있는 이왈종 화백과 배우 안성기 씨(왈종 미술관 제공)

 

이왈종 화백의 본명은 '이우종'인데 그 이름으로 낸 작품은 국전에서 자꾸 떨어지고 '왈종'이란 이름으로 올린 것이 입선돼 그후론 왈종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때로는 시나 음악에서 때로는 민화나 이발소 그림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 이 화백이다. 예술지향주의자가 아니니 굳이 예술가로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되고, 다만 그림 그리는 잡놈일 뿐이란다. 삼청동 집 팔아 생활비 쓸 각오로 제주에 왔는데 아직 그집이 남아있으니 가장의 역할을 하긴 한 거라며 농담을 한다.

 

"늙으니 밝은 색을 찾는 거지. 긍정적으로 살면 그림도 밝아져. 행복하려고 그림 보는데 어둡게 그릴 필요는 없잖아." 

해가 갈수록 작품속 색이 강해지고 환해지는 느낌이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이 화백이 긍정적 사고로 자연속에서 매일 보는 평범한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내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70  넘으니 이제는 한 해만 살다 간다 생각하지. 한 해 살고나면 또 그다음 한 해만 산다 생각하고."

해맑은 웃음으로 자유로운 정신 세계를 스스럼없이 피력하는 이 화백은 이제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밀도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