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줌(Zoom)을 통해 아시안허브 '바른 번역 지킴이' 번역가이자 '글로컬 기자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은혜 씨를 만났다.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낸 이야기부터 한국에 와서 통·번역 전문가와 이주 여성 상담사, 교육자로서 활동하며 느꼈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통역 관련 경험이 많다고 들었다. 그 결과 지금 '바른 번역 지킴이' 활동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통역 쪽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한국에 오기 전에 베트남에 있을 때는 베트남에 온 관광객들을 안내하면서 여행을 돕는 관광 안내사가 꿈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됐고, 오고 나서는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국어 실력을 키웠다. 한국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이주 여성 인권상담소에서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한 것이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통·번역도 수행했다. 그다음에는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에서 근무했는데, 센터에서 이주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할 때 통역을 맡게 됐다.
Q. 이주 여성을 위한 통역상담을 오래한 것 같은데, 활동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는지?
나도 마찬가지로 이주 여성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같은 처지인 이들을 돕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면서 그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보람을 느꼈고,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힘든 상황에 있구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자신의 출신 국가를 떠나와 한국에 정착한 이주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언어와 문화 방면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베트남에서 온 이주 여성의 경우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베트남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려고 한국에 온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언어 장벽에 부딪혀 본인의 경제활동을 영위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그와 관련하여 배우자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또, 이주 여성이 맞닥뜨리는 언어 장벽은 자녀의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Q. 한국에 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데.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와 이유가 궁금하다.
이주 여성 인권상담소,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 등 한국에서 와서 주로 상담이나 사회 복지 쪽 일을 했다. 다문화 가족 지원센터에서 일한 후에는 근방의 복지센터에서도 일했다. 거기서 만난 지인분들께서 내게 사회 복지 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한 번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사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 전에 한국외대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었는데, 애초에 한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도 했고 한국어를 더 깊게 배우면 배울수록 내용이 어려워져서 휴학하고 사회복지학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공부하면서 사회복지학 공부가 내 적성과 잘 맞는다고 느꼈고, 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졸업 후에 사회 복지 쪽에 많이 지원했다. 한국 출신이 아니라는 점 때문인지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또 기회가 있다면 하게 되겠지라는 생각이다. 사회복지학 공부를 마친 현시점에서는 대학에서 또 다른 공부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다.
Q.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데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2003년에 한국에 왔는데, 처음 왔을 때는 시골에서 살았다. 그때는 곁에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고, 언어 장벽이나 문화 차이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지금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센터 등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많이 생겼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라디오 테이프가 부록으로 있는 책을 사서 테이프를 들으며 한국어를 독학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실력이 빨리 오르기를 바라기보다는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공부했다. 한국 TV 프로그램도 많이 보면서 한국어 실력을 키워 갔다. 그래서 지금은 듣기와 말하기는 잘 된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쓰기는 아직 약한 것 같다. (웃음)
Q. 서울 소재 초등학교에서 이중 언어강사로서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베트남어도 가르쳤다고 들었다. 이중 언어강사로서 언어를 가르치는 본인만의 교수법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이중 언어 강사는 중도 입국 자녀들을 대상으로 언어를 가르친다. 베트남 여자와 한국 남자가 결혼하고 그 자녀가 베트남에서 어느 정도 자란 후에 자녀를 한국으로 데려온 경우다. 베트남어는 잘하지만 한국어 실력은 부족하니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서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질문에서 언급한 서울 소재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특정 학생에게 전 과목 수업을 베트남어로 진행하도록 요청받아서 그런 식으로 보조 강사 일을 진행했다. 이외에도 베트남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교수법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는 베트남어를 가르칠 때 말하기를 먼저 가르치는데, 나는 글자를 익히는 것을 우선적인 학습 목표로 둔다. 자음, 모음, 성조를 먼저 배운 후 학생들이 이를 그림과 연결해서 소리 낼 수 있도록 한다. 다른 분들은 바로 단어와 문장으로 들어가지만, 이렇게 하면 나중에 선생님 없이 혼자 공부할 때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글자를 확실하게 익히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현재 다문화 가족지원센터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친 지 4개월 정도 되어가고 있다. 아직 어려서 배운 내용을 금세 잊어버리는 편이라 기반을 탄탄히 쌓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교수자로서 이 부분 관련해서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베트남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특히 베트남어를 배우는 데 성인을 위한 교재는 많이 있지만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교재는 없는 것 같아 이들을 위한 교육용 교구나 교재를 개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Q. 현재 아시안허브에서 바른번역 지킴이와 글로컬 기자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자신의 일을 소개한다면?
바른 번역 지킴이의 경우 외부 기관에서 한국어를 베트남어로 번역한 문서를 전해주면 해당 번역본에서 오타는 없는지, 의미는 잘 전달되는지 등 번역이 잘 이루어졌는지를 살펴서 수정이 필요한 사항을 해당 기관에 전달한다. 검수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번역 문서를 평가하는 기준의 명확화, 그리고 전문 용어를 번역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집의 제공 등 운영 시스템상에서 보완이 필요한 지점들을 건의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 있다. 글로컬 기자단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이주 여성들을 지원하는 기관의 프로그램 등을 홍보함으로써 이러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또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유튜브로 만들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 유튜브 기자단의 경우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베트남 전래동화 동영상 콘텐츠에 자막을 달아 올리고 있다. 또, 유튜브 기자단과 함께 글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Q. 한국 사회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입국할 당시에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바뀌었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제도적 지원도 많이 늘어났고, 사람들 인식도 많이 나아졌다. 앞으로 더 좋아지길 바란다. 전에 다문화 가정 자녀가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서 왕따를 당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자녀를 둔 엄마 입장에서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도 엄연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길 바란다. 과거에서 지금까지 변화해 온 것처럼 미래는 지금과는 또 다른, 변화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윤은혜 씨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언어 장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문화가 달라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말하면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또 일찍이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큰 장점이다”라며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서 그런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교육자로서 힘을 다하고 싶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