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단일 민족의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전체 결혼 중 결혼이민자와의 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출산율 급감과 함께 다문화 배경의 아동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문화'와 함께 공존해야 할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은 다문화 배경의 사회 구성원들에 대해서 어떠한 정책과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의 시선이 완전히 거둬지지 않은 현 대한민국의 상황 속에서 이 고민이 주는 함의는 적지 않다. 

캐나다 출신의 정치철학자 윌 킴리카(Will Kymlicka)는 다문화사회에서의 정치 그리고 소수자들의 권리와 관련하여 여러 편의 유의미한 저술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전체로서의 공동체와 그 구성원으로서 소수자들의 권리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킴리카의 저서 중 '다문화주의 시민권(Multicultural Citizenship: A Liberal Theory of Minority Rights,1995)'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책으로 평가된다. 

 

'다문화주의 시민권'을 통해 킴리카는 민주주의와 다문화주의는 양립 가능함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안이 없는 정치체제라고 평가되는 민주주의는 민족주의와의 친연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개념인데, 이는 민족주의가 공동체의 연대감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큰 효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공동체의 연대감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좋은 조건이 되고, 이것이 복지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틀을 제공한다는 논리로 독해할 수 있다.

일견, '민족주의'와 소수자 권리의 보호를 요체로 하는 '다문화주의'의 개념은 양립이 힘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킴리카는 '정체성'과 '정치적 가치에 대한 합의'를 핵심 개념으로 하는 다문화주의의 개념에 기반하여 '다원주의에 기반한 다문화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기획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그는 '세계주의적인 연민의 시선'과 '민족주의에 기반한 공동체의 연대감'이 공존 가능하다는 그만의 주장을 완성한다. 

다양성과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으로부터 태동한 그의 기획물인 '다문화주의 시민권'은 단일 민족의 신화에 큰 영향을 받아온 한국 사회, 그리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한국 사회에 주는 함의가 크다. 하지만, 정치의 과정과 결과는 확실성이 높지도, 예측 가능성도 높지 않은 바, 그가 제시한 '다문화 민족주의와 시민권'의 기획이 계속 성공적일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킴리카는 다문화 민족주의라는 '숭고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정치와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처음 킴리카의 저술을 읽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와 우리 사회의 방향성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 '아시안타임즈'의 독자들이라면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문체와 그의 주장에 금새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함께 다문화주의를 공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윌 킴리카의 '다문화주의 시민권'을 권유하는 이유이다. 그의 강연은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